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제아 토마스(1961) (문단 편집) === 국가대표 및 드림팀 탈락 === 토마스는 1980년에 [[올림픽]] [[국가대표]]에 뽑혔었는데 하필 그때가 [[냉전]] 시대였고 올림픽 개최지가 구 [[소련]]의 [[모스크바]]였다. 결국 미국이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면서 토마스는 결국 국가대표로 뛰지 못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토마스는 간절히 선발되길 원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드림팀]] 탈락. 1994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드림팀2에 뽑히긴 했지만 결국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등 유독 대표팀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편이었다. 물론 가장 큰 논란이 되는 건 드림팀이라 불리는 1992년 농구 대표팀 탈락. 이 당시 토마스는 리그 최고의 수퍼스타 중 하나였으며, 기량도 여전했으며, 감독 역시 그의 보스인 척 데일리였지만 영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외되었다. 대부분의 전문가와 팬들은 [[마이클 조던]]의 강력한 반대가 그 이유라고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조던 룰을 통해 조던을 폭행 수준으로 괴롭혔던 배드 보이즈의 리더였고 위에 언급한 퇴장사건만 봐도 조던과 토마스는 융화가 될 수 없었다. 당시 조던이 원하지 않는 선수는 드림팀에 뽑힐 수 없었다는 소리도 돌았는데 어째 그냥 루머 같지는 않다. 실제로 조던은 여러 인터뷰 등에서 아이제아 토마스와 드림팀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다소 신경질적인 정도로 거부 반응을 보였다. 한 인터뷰에서는 "아이제아 토마스에 대한 질문은 하지마세요." 라고 이야기하고 인터뷰 하는 측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인터뷰를 하였다. [* [[래리 버드]]도 레임비어와 마혼에게 린치에 가까울 정도로 거친 플레이를 하도 많이 당해서 토마스를 지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버드는 1992년 시점에 이르러 치명적인 등부상으로 아예 코트에서 뛸 수가 없는 지경이었고, 은퇴를 결심하고 있었으나 '드림' 팀의 일원으로 네임 밸류와 상징성을 고려해 명예 선발 된 것이다. 따라서 공개적으로 토마스에 탈락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 사실 이건 그 전까지 언론이 집요할 정도로 토마스 관련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토마스의 실력이나 위상으로 보면 드림팀 탈락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됐기 때문에 루키시절부터 서로 숙적이었고, 대표팀 구성위원회가 가장 눈치를 봤던 (실제로 드림팀을 결성하면서 가장 먼저 연락한게 조던이었다.) 조던에게 화살이 간 것. 어딜 가도 토마스 관련 질문만 해대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 참고로 드림팀에는 배드 보이즈에게 피해를 입은 선수들이 꽤 많았다. 오죽하면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서는 드림팀의 절반이 배드 보이즈와 토마스를 싫어한다는 인터뷰가 나올 지경이다.] 위와 같은 상황때문에 리그에서의 위치나 실력, 네임 밸류와 상징성 모두에서 토마스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피펜이 대신 선발되자, 조던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드림 팀 멤버 중 피펜의 경력과 네임밸류보다 못한 선수는 한 명도 없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토마스는 물론 선발되지 못한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 [[도미니크 윌킨스]]의 위상과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다만 윌킨스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드림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심지어 NCAA 역대 최고의 수퍼스타 [[크리스찬 레이트너]]의 선발 보다도 훨씬 논란이 많을 정도였다. 올림픽에 프로 선수 참가를 강행하긴 했지만, 구색 맞추기 용으로 드림팀에 아마추어를 1명 선발했다. 즉 전원 프로선수가 아니라는 보여주기 식이었던 것. 그렇긴해도 전미 스포츠계 최고의 미남으로도 유명했던 레이트너의 당시 전국적 인지도나 인기는 조던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기에 여론은 무척 호의적이었다. 드림팀 선발 전 레이트너는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 50인에 뽑힐 정도의 빼어난 외모로 연예인 뺨치는 유명인이었다. 따라서 레이트너의 전국적 인지도나 네임밸류는 피펜은 물론, 드림팀의 어떤 스타들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NCAA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서인지 이전 주석에 얼굴 이야기만 줄창 나와서 마치 외모빨로 뽑힌 것 같지만, 레이트너는 대학 4년 동안 Final Four에 못간 적이 없으며, 2년 연속 우승과 한번의 준우승을 이뤄낸 [[듀크 대학교]]의 에이스였다. 현재까지도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고 불리는 [[NCAA Division I 남자농구 챔피언십]]의 최고 득점 및 최다 경기수 및 최다승리 기록 보유자일 정도. NBA에서는 특별한 성적을 못냈지만 NCAA 무대에서는 역대 탑급 선수 논쟁이 나오면 꼭 언급되는 선수니 아마추어 쿼터가 있는 이상 레이트너가 뽑히는걸 이상하게 여기는건 NCAA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의문. 다만 경기장 밖에서의 문제가 없었는데도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안티팬들이 있긴 했다. 사실 조던뿐 아니라 불스 구단도 이제 막 올스타에 추천되고,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라기엔 거리가 있던 피펜이 뽑히길 바라고 있었으며, 선발 결과에 크게 환영했다. 불스와 조던은 아직 여러면에서 미숙한 피펜이 드림팀의 수퍼스타들과 함께 플레이 하면서, 그들의 노하우와 농구에 대한 시야를 배워 한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피펜은 드림팀 합류 이후 전반적인 실력과 함께 농구를 보는 시야가 일취월장 했고, 올림픽을 마치고 리그에 복귀한 후 비로소 조던의 조력자, 불스의 2인자로 알고있는 그 피펜이 된 것이다. [* 이 영향은 바로 1992~93 파이널에서, 피닉스 선즈가 조던 수비에 집중하다 피펜에게 빈번하게 허를 찔리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전과 달리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피펜의 영향력이 호레이스 그랜트보다 더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드림팀 선발 논란과는 별개로, 조던 룰 못지 않게 피펜 괴롭히기로 크게 당했던 피펜도, 평소 토마스라면 이를 갈 정도로 싫어했다. 조던과는 다르게 피펜은 노골적으로 "나는 토마스가 합류하는걸 원치 않는다" 라고 말했고 ~~조던 입김으로 뽑혔으면서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다만~~[* 지금이야 피펜이 호프집에도 갔고 그만한 위상을 쌓았으니 이해가 안가지만 그 당시 피펜은 토마스와 비교해서는 실력이나 인지도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수준이었다. 위에 윌킨스가 언급되었는데 만약 윌킨스가 부상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동포지션의 피펜은 합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당시 위치에서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했으면 경력과 실력으로 볼때 피펜이 가장 떨어지기 쉽다. 드림팀은 92년도에 올림픽에 나갔지만 열명은 91년도 9월에 이미 선발되었고 이듬해 5월에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레이트너가 막차를 탄 것이다. 피펜은 91년에 드림팀에 선발됐을 당시 올NBA팀 0회, 올스타 1회, 심지어 91년도에는 올스타에도 선발되지 못한 선수로, '91년 파이널에서 의외의 뛰어난 활약을 한 조던의 조력자'였지 리그를 주름잡는 슈퍼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던과 관련해서는 "아마 조던도 원치 않을 것이다" 라면서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조던 등 몇몇이 강경하게 토마스의 드림팀 합류를 반대하고 있을 때 '''다들 이를 묵인하고 있었다고 한다.''' 라고 밝혔다. 사실 피스톤즈를 싫어한 건 조던만은 아니었다. [[칼 말론]]은 이미 토마스에게 팔꿈치를 사용해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며 복수할만큼 사이가 안 좋았고,[* 토마스가 매치업 상대였던 [[존 스탁턴]]에게 심한 파울을 하자 말론이 대신 복수했다.] [[패트릭 유잉]]도 배드 보이즈 비디오에서 토마스와 배드 보이즈라면 치를 떠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중에 NBA Open Court에서 농담도 주고 받으며 친해진 바클리도 그 당시에는 배드 보이즈라면 학을 뗄 정도로 싫어했으며, 실제로 싸움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바클리였기에 난투극도 여러차례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상 배드 보이즈는 거의 그 당시 외톨이라고 불릴 정도로 좋아하는 팀이 없을 정도였으니 다른 멤버들도 좋아할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아이제아와 사적으로 친했던 [[매직 존슨]]만 토마스를 옹호하는 인터뷰를 했지만, 몇년 후 그의 자서전에서 "어느 누구도 아이제아와 플레이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제아가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더라도 그는 기회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당시 토마스를 옹호한 것은 단지 립서비스였다고 고백했다. 또한 대표팀을 구성하기 시작한게 1991년 플레이오프 종료직후였는데 이 때 토마스를 필두로 한 피스톤즈 선수 상당수가 게임 종료되기 몇초전에 라커룸으로 퇴장, 여론으로부터 격렬하게 까이던 중이었다. 위에 언급된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런 여론도 토마스의 탈락에 크게 적용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그 배드 보이즈의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것은 아이러니~~[* 하지만, 오히려 배드 보이즈의 감독이었기에 드림팀의 감독을 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더 많다. 그 성깔있는 배드 보이즈를 맡을 수 있다면 개성이 제각각인 드림팀을 코치하는 것도 가능하게 보였던 것. 실제로 바클리는 "배드 보이즈 그 새X들을 코치할 수 있다면 우리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까지 하였다.] 1992년 드림팀 탈락은 NBA의 뒷이야기를 털어놓는 토크쇼 Open Court에서 늘 아이제아 토마스를 놀리는 소재이기도 하다.[* 나머지 하나는 칼 말론, 현역 시절 말론이 육중한 팔꿈치로 토마스의 얼굴을 찍어버려서 수십 바늘을 꼬맨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에서 칼 말론 이야기만 나오면 패널들이 아이제아의 오래된 상처가 쑤시고 있다면서 놀리는 게 일상이다.] 스코티 피펜이 "조던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도 아이제아의 합류를 반대했을 것"이라고 인터뷰했을 당시, 다른 패널들의 놀림에 아이제아 토마스는 "나는 마이클 조던이 아이제아 토마스가 드림팀에 합류하는 게 싫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고, 매직 존슨이 아이제아 토마스가 드림팀에 합류하는 게 싫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근데 스코티 피펜이? Maaaaaaaaaaan, Come on!"이라고 받아친 적이 있다. [* 위에서 상세하게 부연한 것처럼 토마스는 당시 조던, 매직, 버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NBA 최고의 스타였다. 피펜은 드림팀에 뽑힐만한 자격이 있던게 아니고, 드림팀에 다녀오고부터 그에 어울리는 선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중에야 피펜이 커리어가 쌓여 토마스 못지않은 레전드가 되었지만, 드림팀 당시 4년차에 불과한 피펜의 리그 내 위상은 생애 처음으로 올NBA팀에 선정이 되었고, 조금씩 스타로 인정받아가는 시기의 떠오르는 젊은 선수였다. 당시 자타공인 슈퍼스타들만 합류하던 드림팀의 다른 멤버들과는 위상 차이가 꽤나 컸다. 따라서 저렇게 반응하며 가소롭다는 듯이 이야기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피펜이 아무리 날고기어봐야 불스에서는 조던을 넘을 수 없는 2인자다. 하지만 토마스는 피스톤즈의 1인자이자 에이스로써 팀을 우승으로 이끈, 특히 버드와 매직을 넘어서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위상은 호불호를 떠나 토마스 >>>>>>> 피펜이라고 보는게 합당하다.] 수십년 뒤에 아이제아와 한솥밥을 먹었던 존 샐리는 아이제아가 드림팀에 선발되지 못한건 조던 때문이 아니라 매직 때문이라고 주장을 했다. 샐리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조던은 자신의 의견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닌데다가 매직이 1차로 은퇴했을때 그가 절친이라고 믿었던 아이제아가 매직의 HIV와 관련해 그의 성 정체성을 의심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HIV나 에이즈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걸렸다고 하면 흔히 동성애로 인해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에 큰 상처를 받은 매직이 그를 막았다는 주장이다. 마침 위의 자서전에서도 매직이 아이제아에 대해서 좋은 발언을 하고 있지는 않기는 하다. 물론 샐리는 조던과도 한솥밥을 먹은적이 있으므로 아예 관계가 없는 매직보다는 조던을 옹호하는게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걸 단순히 "조던 옹호"라고 보기엔 샐리가 조던과 함께 뛴 세월이 너무나 짧다. [* 샐리는 96년 3월에 불스에 합류해 잔여 시즌을 뛰었을 뿐이다. 즉, 우승이 확정되던 6월까지 고작 3개월 반 같이 뛰었다.] 반면 토마스와는 데뷔 이후 6년동안 같이 뛰었다. 위 발언은 단순히 매직을 탓하는 것이 아니고 "토마스가 매직의 성 정체성을 의심했다"는 민감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고작 4달도 같이 안 뛴 동료를 위해 6년 같이 뛴 동료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했다고 보긴 무리다. 즉, 샐리가 조던을 옹호하기 위해 이런 발언을 했다고 보긴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 또 드림팀의 구성을 보면 대학생인 레이트너와 등 부상으로 정상적으로 뛰기 힘든 버드를 제외하면 한 포지션 당 2명으로 구성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토마스가 뽑힌다면 포인트가드 중 한명이 대신 빠지거나 다른 포지션에서 한명 빠져야 하는데 후자의 경우 팀 자체 연습에서 균형이 맞지 않게 되고 해당 포지션에서 부상 등 문제가 생겼을 시 대처가 힘들다. 따라서 빠진다면 포인트가드인데 드림팀 결성에 큰 영향을 끼치고(참가에 회의적이었던 조던을 같이 뛰어보는게 버킷리스트였다고 설득, 버드도 우리가 은퇴 전 미래 세대들을 위해 남길 유산이라고 설득) 최고 스타였던 매직은 빠질 수 없다. 남은 것은 스탁턴인데 86년부터 연속으로 어시스트 1위 92년까지 스틸 1위 두번 하고 전술적으로도 말론과 픽앤롤, 토마스보다 뛰어난 외곽 옵션인 그를 제외하는 것이 팀에 도움이 될까? 88올림픽 설욕과 NBA의 세계화 두가지를 노렸던 드림팀 입장에서는 스타 파워에서는 이미 조던, 매직, 버드가 있기에 필요 없었고 전술적으로는 스탁턴이 다 활용도가 높았기에 다른 선수들과 갈등이 없었더라도 안뽑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선수들과 사이까지 안좋았으니 어쩌면 뽑히지 않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 사실 네임 밸류가 아닌 당시 기량으로만 봐도 스탁턴에게 밀린 것이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토마스는 86-87 시즌 2nd에 뽑힌 것을 마지막으로 은퇴 시즌인 93-94까지 단 한 번도 All NBA에 들지 못한 반면 스탁턴은 87-88 시즌 All NBA 2nd에 뽑힌 것을 시작으로 90-91 3rd에 뽑힌 것을 제외하면 올림픽이 열리는 92년까지 언제나 2nd에 이름을 올렸다.] * 다만 드림팀은 구성 자체가 로스터 밸런스가 아닌, 당대 탑급 선수들을 뽑는 상징적인 팀이었다. 실제로 당시 미국과 다른 세계의 격차를 생각하면 올스타급 이상이면 그냥 아무나 뽑아도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었고, 전력을 생각하면 건강 문제가 심각해 잘 뛰지도 못하는 [[래리 버드]]를 굳이 뽑을 필요도 없었다.(실제로 버드는 이미 프로무대에서 은퇴를 선언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포지션 밸런스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게, 저 중 가장 합류이유가 빈약한 피펜이 빠져도 가드인 매직, 조던, 드렉슬러 모두 풀타임 스몰포워드가 가능한 선수들이다. 팀 자체 연습에서 균형도 신경쓸 이유가 없는게, 팀 연습이란게 꼭 PG1명, SG1명...이런식으로 5포지션을 상세히 나눠서 하는게 아니다. 실제로 드림팀이 결성 초기에 몬티 칼로에서 실전처럼 한 전설적인 연습경기에서 조던 팀의 구성은 조던. 스카티 피펜, 크리스 멀린, 래리 버드, 패트릭 유잉으로 슈팅가드 한명, 스몰포워드 세명에 센터 한명이었다. 결정적으로 당시 드림팀은 대회 내내 타임아웃조차 한번도 안 부른 팀이다. 즉, 전술이고 뭐고 따질 필요도 없이 그냥 세계 무대의 팀들과 상대조차 안되는 미스매치였던 것. 실제로 로스터 중 유일하게 198 미만 선수라 전략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스탁턴은 경미한 부상으로 네 경기, 그것도 평균 7분씩만 뛰었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당시 농구계가 모두 알고 있었다. 괜히 "꿈의 팀"이란 별명이 붙은게 아니다. 즉, 토마스가 빠진 것은 로스터 밸런스나 전력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토마스는 매직, 버드와 더불어 80년대의 거물 중 하나로서 상징적인 의미로 합류하는게 더 적합했을 인물이다. 괜히 농구계가 토마스 탈락 이후 일제히 수근거린게 아니다. '''누가봐도 탈락될 선수가 아니었으니까''' 온갖 소문이 돈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